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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기 시작하게 된 스토리 - 1탄

by J.Nase 2022. 1. 7.

 

 

자전거 얘기

이륜자전거는 국민학교 1학년 때 처음 탔다.

당시 다른 친구들은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자전거로 뛰기도 하고 걷기도 했다.

친구를 쫓아다니는 격이다.

그게 안됐는지 네발자전거를 사주었다.


사륜차를 타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조바퀴가 휘면서 이륜으로 가는 것에 익숙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렇게 해서 자전거를 배우게 되었다.

돈 있는 놈은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기어다니는 자전거를 탔다.

1천원에 자전거 스포크에 넣는 색구슬을 넣고 보조바퀴를 분리해 스탠드도 달았다. 전자혼(누르면 소리가 바뀐다)도 붙어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다가 친구가 내가 없을 때 자전거를 빌려서 오락실에 가서 잃어버렸다.


그래서 기존의 자전거보다 조금 더 큰 자전거를 획득하게 되었다.

기존 자전거는 10만원이었지만 이번에 친구가 배상한 자전거는 9만원.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밥 1만원어치 더 줘야 한다고 말한 것 같아.


그 친구는 국민학교 1학년 때인 1994년 서울 중랑구 면목2동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김*관이라는 친구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종교인이 된 것 같아서 더 이상 알아보지 못했어.

그 자전거는 버텨서 2002년까지 탈 수 있었다. 8년이나 탔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안 익었네?



1995년 국민학교 2학년 10월 시골로 이사 오게 됐다.

이사를 오면서 이 자전거는 사람을 3명이나 태우고 달렸으며, 또는 자전거 뒤에 줄을 달고 삼륜차, 4륜 자동차를 메달로 동네를 활보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주워오신 12단 자전거 이거 타다 넘어져서 이마 깨기.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면 아이가 주는 바람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 못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전교생이 모여 놓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온 아이들 앞으로 불러내 전교생 앞에서 파닥파닥. 1999년 일임)

(물론 그전에 타지 말라고 했다.) 어찌됐든 왜 타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친구들은 교량 위에서 다이빙하던 놈들이다. 자전거 따위야)

교량 위에서 다이빙을 한다고도 맞았을 것이다.)



삼촌이 타던 21단 자전거가 있었지만 왠지 낯설거나 커서 잘 타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타던 저 자전거만 계속 탔어. 좀 작아지긴 했는데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동네에서 작은아버지 댁에서 잠깐 살게 되었다.

학교까지 걷기가 귀찮아서 집에 있던 21단 자전거를 가져왔고, 그 자전거도 세월의 흔적과 비를 합친 탓에...

리모델링이 되어 있어서 대충 검은 락카에 칠해 타고 다녔다.

이 와중에 앞바퀴에 구두가 끼는 바람에 두 개의 스포크가 터졌지만 계속 타고 다녔다.



그리고 앞 브레이크 고장 등 상태가 심각했으므로 새 자전거를 조사하게 되었다.





이게 시작이다.



여기서 자전거를 찾지 않았다면 나는 할 수 있는 운동이 전혀 없는 그런 인간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고3이던 2005년

ALTON RCT 3 . 0



[ ALTON RCT 3 . 0 ]

이 자전거라면 세계 일주도 가능할 것 같았다. ]​


하이브리드 자전거라는 게 그만큼 생겼다.

십오만 냥

검색해보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카페를 알고

다시 검색해보니 오벵 씨의 자전거 전국일주 여행기를 보았다.

현재 그 여행기가 있었던 오벤님의 개인 사이트는 폐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거야

자전거를 샀다. 이때부터 시작이야...

그 여행기를 보고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했다.

저 포함해서 친구들 셋이서 대학교에 가면 여름방학 때 자전거 타고 여행가자고 해서

그중 한 사람은 자기는 터널을 자전거를 타고 꼭 들어가야겠다면서 어쨌든 자전거 여행을 하자고 했다.

어떤 친구는 집에 60만원짜리 자전거가 있다고 했고,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자전거가 무슨 60만원이나 하느냐고 놀랐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 지금 바퀴만 한쪽에 얼마나 걸린다구.wwwwwwwww )

나는 서서히 여행 준비를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자전거를 여러모로 많이 공부한 것 같아. 틈틈이

휴대용 펌프 사고, 장갑 사고, 속도계 사고, 안장 바꾸고, 핸들 뒤집고, 수리 배우고.



차곡차곡 모아둔 비자금이 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해남까지 갈 것을 계획하였으나 어느덧 전국 일주가 목표가 되었다.



전국 일주

눈에 보이는 건 이것밖에 없었어.

꼭 하고 싶었던 전국일주





그렇게 고3을 보내고 춘천 강원대학교에 오게 되었다.

그래도 고3때 공부를 시작해서 나름대로 선전한거라고 생각해.


(고등학교 얘기는...)풀고 싶지 않다)

병원 갔다와서 마음이 바뀌면 풀릴거야 뭔가 보는 사람도 없지만 자기만족!)





RCT 3.0 이 자전거는 대학 1학년 때도 훌륭한 교통수단이었다. 멋진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내게는 유일한 교통수단.

1학기에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돈이 많이 들기도 했고 별일 없었다. 공부는 하기 싫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크릿 페달을 사고, 크릿화를 사고, 헬멧을 사고, 텐트를 사고.

착착 전국 일주의 준비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체력적으로 준비를 안 했다. 왜 그랬을까?



방학이 됐어. 아 디카가 없어. 디카도 샀다.

근데 집에서 가지 말래

고3 때부터 준비했는데 가지 말라고



가출을 결심했다.

새벽녘에 몰래 옥상에서 빠져나와 자전거에 짐을 싣고 거리로 나섰다.

침대에는 여행 간다고 쪽지를 올려놓고

원래 계획은 읍내로 나간 뒤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서울까지 갔다가 서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버스를 놓쳤다.



집에 왔다.

새벽에 자전거 타고 왔다고...

그걸로 끝.







떠날 용기가 그 당시에는 없었던 것 같다.




군대에 가게 되었다.

자전거와 온갖 용품은 다 팔았다 헬멧, 신발, 페달, 자전거 등등


[다들 거의 특A급이었다] 매진되었다. 나는 지금도 저 헬멧보다 싼 것을 쓰고 있다.



그거 팔고 집에 내비게이션 하나 사놓고 난 군대에 갔어.



헬기를 타면 돈을 더 내고 간식을 다른 부대보다 더 많이 준다고 해서...특공대에 들어갔다.

(헬기라면 돈을 더 줬다. 병장 월급 50% 인상 그래도 월 48,000원)

(부식을 더 주긴 준다. 그런데 위에서 전부 들고 나오는 것은 계획의 70%도 오지 않는다)

(한 대대 참모 부사관 간부가 라면 한 통 훔치는 것을 목격하고 보고했지만 묵살된다.)

(2병 때 타 중대로의 전출간 선임이 있었는데 어느 날 와서는 거의 새것 같은 내 활동화를 신고 가버렸다.

나는 활동화가 없어 전역한 선임의 구멍이 뚫린 활동화를 신고 있었다. 전역할때까지

구두에 구멍이 커서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올 정도로 나는 당당하게 엄지발가락을 내밀고 있었다. 대대장이 오든 연대장이 오든 상관하지 않았다. 분대장이 되더라도 그 구두를 신는다.

나는 이병 때부터 계속 보급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위에서 잘라내고 내려오는 신발은 285 이상의 수요가 없는 큰 활동화.

간혹 간부가 뭐라고 하면 신발이 없어서 이거 신는다며 계속 신었지만 제대할 때까지 하급부대까지는 활동화가 오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상급 보급부대는 말이 안 되겠지만 하급부대는 아직 보급되지 않았다.군대 얘기는 나중에 더)





돈 모았다.

자전거를 사려고요.



월급통장과 연결된 체크카드도 가위로 잘라버렸다. 돈 좀 모으려고.

그래서 돈이 좀 모였어

담배도 안피우고, 외출, 외박, 휴가도 안나오고, 면회도 안와. 아무 쓸모도 없었다.

외박을 하면 몰래 집에 와서 휴가를 나와서도 집에만 있었다. 외출할 때는 PC방 갔지

PX. 멀어서 혼자 못 갔고, 가도 냉동 먹으려면 줄 서서 기다려야 되니까 시끄러워서 못 가겠어

가끔 당직근무때 px가는 전우에게 좀 사달라고 했다. 컵라면, 냉동짜장면, 주스 이런 거



돈이 모일 수밖에 없다.







졸려.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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